안녕, 나는 새로운 집에 막 도착한 반려묘야. 아직은 너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지 않았고, 가끔은 낯선 환경이 무섭기도 해. 그래서 나는 가끔 숨어. 이건 겁이 많아서가 아니라, 내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 중이기 때문이야. 오늘은 내가 왜 숨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편안한 공간에서 천천히 마음을 열 수 있는지 알려줄게.
나만의 숨을 곳이 있어야 안심이 돼
고양이인 나는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려. 갑자기 이사하거나 입양되면, 집 안 곳곳이 낯설고 위험하게 느껴져. 이럴 때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뭐냐고? 바로 숨는 거야. 너는 그런 나를 보고 “왜 자꾸 숨어?”라고 말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건 내가 안정감을 찾는 방식이야.
숨는 건 나에게 ‘재정비의 시간’이야. 사람에게는 집이 편안한 공간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 공간이 아직 시험대 같은 곳이야. 모든 냄새, 소리, 조명, 움직임이 나에겐 자극이지. 그 자극들을 천천히 받아들이기 위해 나는 조용하고 좁은 공간을 찾아. 벽장 구석, 침대 밑, 소파 뒤 같은 곳 말이야.
나만의 은신처가 생기면, 거기서부터 세상을 관찰하게 돼. 너의 발소리, 말투, 행동 하나하나를 안전한 곳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거지.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내가 그곳에서 나와 너에게 다가간다면, 그건 내가 이 공간을 받아들였다는 의미야. 그래서 너는 내가 숨는 걸 억지로 막지 않아야 해. 오히려 숨어 있을 수 있도록 편안한 공간을 마련해줘야 해. 덮을 수 있는 상자, 작은 캣하우스, 담요를 덮은 소박한 공간 하나면 충분해. 그 안에서 나는 다시 세상과 연결될 용기를 준비하고 있어.
사람의 손보다 필요한 건 공간이야
처음부터 나를 안아주려고 하지 말아 줘. 고양이에게 ‘물리적 접촉’은 믿음이 생긴 이후의 행동이야. 네가 아무리 친절하고 따뜻해도, 나는 너의 손보다 내 공간이 먼저 필요해. 그 안에서 나는 나를 다스리고, 너와의 거리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
공간은 단순히 숨는 장소가 아니야. 나의 기분을 회복시키는 심리적 피난처야. 높은 곳에서 너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캣타워나, 조명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창가 쿠션 같은 것도 좋아. 그런 곳에서 나는 나답게 쉴 수 있어. 그리고 그 공간을 내가 선택하게 해주는 것이 정말 중요해. 만약 너의 손이 내 은신처를 억지로 열거나, 나를 끌어내려고 한다면, 나는 신뢰를 잃게 돼. 내가 선택하지 않은 노출은 위협처럼 느껴지거든. 하지만 네가 조용히 물그릇을 가까이에 놔주거나, 조심스럽게 이름만 불러준다면, 나는 네가 안전한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게 될 거야. 그리고 네가 내 은신처를 바라보며 그냥 미소만 지어도, 나는 그걸 알아차릴 수 있어. 사람의 표정과 기운은 고양이에게도 느껴져. 너의 진심 어린 존중과 기다림이 있다면, 나는 내 공간을 벗어나 너의 옆자리로 이동하게 될 거야. 단지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야.
은신처는 곧 신뢰로 가는 다리야
조용히 숨을 수 있는 공간을 지켜준 덕분에 나는 너를 조금씩 믿게 됐어. 내 공간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네가 나의 감정과 속도를 존중한다는 뜻이거든. 그건 나에게 정말 소중한 신호야. 그래서 나는 조금씩 네 옆으로 다가가고 있어. 사람과 고양이 사이엔 언어가 없지만, 우리는 공간으로 대화할 수 있어. 내가 어디에 머무는지, 어떤 자세로 쉬는지, 네가 지켜봐 주면 알 수 있어.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으면 경계 중이고, 배를 보이고 눕는다면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야. 그런 내 바디랭귀지를 읽어주는 너라면, 나는 더 편안하게 마음을 열 수 있어. 시간이 흐르면, 나는 내 은신처에서 너의 무릎 위로, 창가로, 침대 위로 옮겨가게 돼. 그리고 어느 날엔 네 품 안에서 골골 소리를 낼지도 몰라. 그건 내가 숨기 위해 만든 공간에서, 너와 공존하는 공간으로 삶이 바뀌었다는 뜻이야.
네가 나에게 해준 가장 큰 선물은 ‘기다려준 시간’이야. 그 시간 동안 나는 내 속도로 너를 이해했고, 너도 나를 억누르지 않았어.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된 거야. 숨어 있는 시간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을 위한 준비였다는 걸, 이제 너도 알겠지?
결론: 숨는 시간은 사랑을 준비하는 시간
내가 벽장 안에 있을 때조차, 나는 너를 향한 마음을 키우고 있었어. 고양이는 속도가 느린 사랑을 주는 존재야. 그리고 그 시작은 늘 ‘숨는 것’부터야. 너는 나를 기다려줬고, 나는 너를 믿게 되었어. 숨어 있는 시간은 회피가 아니라, 사랑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는 걸 너는 잊지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