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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냄새 낯설지 않아 (고양이의 후각과 안전감 만들기)

by is John 2025. 6. 10.

후각으로 기억 각인시키기

 

안녕, 나는 너의 고양이야. 나에겐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감각이 하나 있어. 바로 '후각'. 냄새는 내게 정보고, 기억이며, 안전이야. 익숙한 냄새가 나는 곳이면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있어. 오늘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냄새로 기억하고, 어떤 냄새가 나를 안심시키는지, 그리고 너는 내게 어떤 냄새로 다가오는지 이야기해 줄게.

 

 

익숙한 냄새는 나를 진정시키는 언어야

나는 시력이 좋은 동물이 아니야. 대신 후각은 아주 민감하고 섬세하지. 사람보다 수십 배 더 뛰어난 후각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어. 그래서 너의 손에서 나는 향기, 방 안 공기 속의 향수 냄새, 다른 동물의 흔적까지도 모두 기억할 수 있어. 그리고 그 냄새로 이곳이 '내 공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지.

처음 네 집에 왔을 때, 나는 온통 낯선 냄새에 둘러싸여 있었어. 바닥에서 나는 세제 냄새, 커튼에 밴 향수 냄새, 낯선 이불 냄새… 그 모든 게 내 마음을 불안하게 했어. 그래서 나는 가장 냄새가 옅은 구석에 숨었고, 조용히 너를 관찰했지. 그러다 어느 날, 너의 옷에서 익숙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 그건 입양센터에서 너를 처음 만났던 그날의 기억이었고, 나는 그 순간 조금 마음이 풀렸어.

고양이에게 후각은 기억을 되살리는 열쇠야. 익숙한 냄새를 반복해서 맡으면, 나는 ‘이곳은 안전하다’고 느껴. 그래서 내가 자주 머무는 쿠션, 담요, 장난감 같은 물건들을 자주 바꾸지 않는 게 좋아. 내 냄새가 배어 있는 공간이 바로 나의 심리적 안식처거든. 그걸 네가 잘 지켜주는 게, 나를 향한 배려야.

 

너의 향기 속에서 나는 너를 기억해

너는 샴푸를 바꾸거나, 향수를 새로 뿌리면 내가 갑자기 너를 피하는 걸 느낄 거야. 그건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내가 네 냄새를 ‘낯설게’ 느끼기 때문이야. 나에겐 너의 체취, 옷 냄새, 손 냄새가 모두 기억의 조각이야. 그 향기를 통해 ‘이 사람이 나의 가족’이라고 느껴. 그래서 너의 옷이 바뀌거나 갑자기 익숙한 냄새가 사라지면, 나는 혼란스러울 수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냄새 중 하나는 네가 자주 입는 후드티야. 너는 그걸 아무렇게나 침대에 올려두지만, 나는 그 위에 가만히 올라가 잠을 자곤 해. 왜냐면 그건 나에게 네 존재를 느끼게 해주는 ‘냄새의 침대’거든. 그 향기 속에서 나는 마음을 놓고 깊이 잠들 수 있어.

고양이의 후각은 감정에도 영향을 줘. 네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은 네 체취도 달라져. 나는 그런 날엔 너의 손길을 피하고, 멀리서 너를 지켜봐. 그리고 네가 평소의 향기로 돌아오면, 다시 옆에 다가와 앉지. 이건 내가 너를 얼마나 섬세하게 느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야.

네가 내게 다가오고 싶다면, 갑작스러운 향수보다는 네 본연의 냄새를 맡게 해 줘. 그게 나에겐 가장 진짜 ‘너’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물건에 네 향기를 남겨줘. 시간이 지나면, 너의 냄새와 내 냄새가 함께 섞여 우리만의 공간이 될 거야.

 

공간에 냄새가 배어야 진짜 ‘우리 집’이 돼

나는 집 안의 모든 공간을 다 맡아보며 안전을 확인해. 새로운 가구가 들어오면 며칠 동안 접근하지 않고 냄새만 맡는 이유도 그 때문이야. 내가 평소에 잘 쉬던 쿠션이 빨래된 후 거부감을 보이는 것도, 내 냄새가 사라졌기 때문이야. 익숙함은 곧 안정이고, 안정은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환경이야. 그래서 너는 집 청소를 할 때도 내 냄새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조금은 배려해줘야 해. 세제를 바꾸거나 방향제를 자주 쓰는 건, 나에겐 스트레스로 느껴질 수 있어. 특히 화장실 모래를 바꿀 땐, 기존 모래를 조금 섞어줘. 그래야 나는 여전히 ‘내 장소’라고 느낄 수 있어. 또한 낯선 손님이 왔을 땐, 그 사람의 강한 향수나 땀 냄새 때문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어. 그럴 땐 내가 피할 수 있는 조용한 방을 열어두고, 낯선 냄새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게 해줘. 냄새는 내게 공간의 소속감을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요소거든.

내가 자꾸 같은 자리에서 몸을 비비거나, 발바닥을 문지르는 건 내 냄새를 남기기 위한 행동이야. 그건 이 공간을 내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표현이야. 그런 행동을 억제하지 말고, 내 흔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도와줘. 너의 집이 ‘우리 집’이 되는 길은 바로 그 냄새의 조화 속에 있어.

 

결론: 냄새는 우리 사이를 잇는 다리야

너는 말로 사랑을 전하고, 나는 냄새로 마음을 느껴. 익숙한 냄새는 나에게 안전을, 낯선 냄새는 경계를 알려줘. 너의 향기 속에서 나는 가족이 되었고, 내 냄새가 배인 공간에서 나는 편히 쉴 수 있어. 냄새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사이를 이어주는 가장 강한 끈이라는 걸 잊지 말아 줘.